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와 아이들 3집 (문단 편집) == 안티의 등장 == 서태지 안티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크게 음악적 안티와 사회/문화적 안티로 나눌 수 있다. 음악적 안티는 이 앨범이 락으로 회귀하면서 발생했다. [[시나위(밴드)|시나위]]의 베이스 주자였던 서태지는 원래부터 본류라 할 수 있는 정통 메탈 사운드 마니아들에겐 전향자 취급받고 있었고, 3집의 행보는 오히려 자존심 센 락매니아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특히 <교실 이데아>에 협력하고 라이브에서는 아예 특별게스트로 참가한 크래쉬 같은 경우는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나중에 인터뷰에서 보컬 안흥찬이 해명한 적도 있을 정도. 이 때가 PC 통신의 확산기[* 당시 인터넷은 한통과 데이콤이 상업서비스를 실시했지만, 부유층과 소수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이었고, PC통신과 인터넷을 같이하는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당대 PC통신 요금이 비싼데다가 컴퓨터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당대의 PC통신 이용자들은 제법 사는 계층이기는 했다.]라고 할 만한 시기였는데 음악 게시판 등지에서 많은 논쟁이 오갔었다. 사회/문화적 안티는 3집의 사회비판 메시지에 반발한 기성세대에서 등장했다. 1집, 2집에서도 대중문화의 주축이 10대로 넘어가는 현상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은 있었다지만 음악 산업 분야에 한정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서태지가 3집에서 보여준 내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세대간 담론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언론을 중심으로 '서태지 죽이기'로 통칭되는 공격이 있었다. 여기에 교실이데아 루머 문단에서 소개할 '[[피가 모자라]]' 사건 때문에 개신교계에서도 안티가 발생했고 기존 팬들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대 교육계 입장에서는 교복부활이 막 완료되었고, 청소년 탈선방지를 명목으로 두발단속도 강화해놓았는데 이걸 뒤엎으려는 흐름이 나타나자 당혹해했고, 보수적인 기성세대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트로트가 한물간 음악 취급받기 시작하고, [[힙합]]과 [[랩]]이 주류가 되는 등 음악시장의 유행이 자기네들 취향과 맞지 않게 흘러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거기에 대놓고 민중가요스러운 가사를 넣은 노래까지 내놓자 여기에 발작한면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